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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덧없다


 생각의 꼬리를 물고 물다가, 옛애인과의 일화가 생각났다. 그러고보니 그 사람 이름이 뭐였지. '남자친구' 가 된 순간부터 왠지 특별함을 부여하고 싶어서 이름으로 부르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헤어진 다음부터는 그 흔적이었던 이름을 기억하기 싫어서 괜시리 닉으로 불러왔던 그.

 그의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100일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계속 불렀을 이름인데. 적절한 애증이 범벅된 채로 녹아있을 이름이었는데. 그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스스로 너무 신기해서 잠시 멍해있었다. 신기해서 포스팅을 하고 있는데 지금, 그의 이름이 기억이 났다. 옛날 내가 만든 캐릭터의 이름을 거꾸로 한 이름이어서 그래도 외우기 쉬웠었구나.

 가장 먼저 떠오른 이름은 캐릭터의 이름. 그 다음에야 그의 이름이 그것을 거꾸로 한 이름이었다는 게 생각났다. 웃음이 났다. 정말 잊어버렸던 거구나 나.

 그와 헤어진 후, 제일 먼저 전화번호를 지웠다. 저장했던 문자를 지웠고, 그의 블로그 주소도 지웠고, 그가 빌려줬던 책도 돌려줬다. 그렇지만 이름은 잘 지워지지 않았다. 뭐가 그리 진득했길래 지워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오늘, 그의 이름이 잠시나마 지워졌다. 그가 남긴 상흔이 지워질 때까지도 붙어있었던 이름이. 
 기억은 그림자 같다.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나에게 붙어있지만, 밤이 되면 사라져버린다. 오늘에야 그 기억에, 밤이 찾아왔다.

by 파닭 | 2008/07/17 01:27 | 일상의 소소함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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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연정 at 2008/07/17 10:39
난 이상하게 다 기억나[....] 도합 9명의 이름이 몇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구나 짱싫어[.....]
Commented by 희정 at 2008/07/17 11:00
...기억력이 좋으시군요..(..
Commented by 타에 at 2008/07/17 11:03
난 핸드폰번호. 6년이 다되가는데 절대 안지워지더라.;
..것참. =_=~
Commented by 여람 at 2008/07/17 19:48
...흑... 지우고 싶어도 없어서 못 지우는 이 설움(...)
아니, 설움까진 아니더라도(...........
Commented by 파김치 at 2008/07/18 14:16
아아; 적어도 언제까지는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도, 막상 떠올려보면 한달 만에도 잊혀지는 게 사람 기억이지.
Commented by 파닭 at 2008/07/19 13:03
연정/ 덜덜덜 9인분의 기억이라니 싫다;;
희정님/ 조, 좋은 걸까요?;;
타에언니/ 와아;; 그거 좀 괴롭네요;;
여람님/ ...아, 아니 생기실 겁니다. 네에;;
파/ 응응 참 덧없어[먼산]
Commented by 나인볼 at 2008/07/22 20:14
모 만화에서도 나오는 대사지만, 그냥 좋아했었던 기억 빼고는 다 잊혀진다는게 맞는 것 같아요. 망각만큼 확실하고 엄한 기준도 없는 법이죠. 가끔은 무서워질 정도로...
Commented by 파닭 at 2008/07/23 15:18
나인볼님/ 정말 무서웠어요. 그치만 그 사람과의 기억에서는 왜 아직도 개그가 될만큼 괴로운 기억밖에는 남아있지 않은건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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