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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이, 오늘도. ~제절초님께~


 또 저런다. 저 지긋지긋한 패턴.

 "호, 혹시 노트 필기 한 거 있어...?"

 무슨 노트인지 얘기를 해야 빌려주든 말든하지. 이 녀석은 몇 년째 나랑 얼굴을 보는 건데 아직도 나랑 얘기하면 말을 더듬냐.

 "무슨 노트."

 "아... 음... 무, 물리."

 분명 어떤 노트를 빌릴지 생각도 안 하고 무작정 빌리러 온 거다, 저 녀석. 아아 정말이지 지겹다니까. 가방을 뒤적여 물리노트를 꺼내 녀석에게 내밀었다. 되도록 손을 앞으로 해서. 정중하게 두 손으로.

 "자, 가져가."

 "으, 응."

 노트가 바로 면전에 있는 데 가져갈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머뭇거린다. 점점 얼굴이 빨개지는 것이 어렴풋이 붉어진 저녁 햇살에 비춰 더더욱 붉어보인다. 오늘 내가 주번이라 늦게 갈 것도 알고 그래서 자기도 지금까지 기다려 노트 빌리러 온 거면서 왜 저런담. 이유는 알고있다. 내가 두 손으로 줬기 때문이다. 그것도 정중히 꽤 앞으로 해서.

 "안 가져갈꺼야? 무거워. 얼른 가져가."

 새빨개진 얼굴로 머뭇머뭇 손을 내민다. 엄지와 검지손가락 끝을 조심히 내밀더니, 노트의 끝을 살풋이 잡아끈다. 제법 두터운 손가락이 얹어지자 노트가 정말 작아보인다. 덕분에 그 모습이 애처로워 보일정도로 귀여워져서, 저도 모르게 괴롭히듯 말하고 만다.

 "그렇게 해서 노트가 집어지나. 한두번 빌려가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래? 미안하지도 않으면서."

 "아, 아니..... 으음, 아니 그냥, 아무 것도 아니야."

 퉁명스런 내 말투에 뭔가 결심한 듯, 그 곰같은 오른손을 덥썩 노트에 올려놓는다. 내 두 손이 잡지 않은 곳, 아니 잡을 수 없는 곳, 노트 정중앙을 잡고 노트를 쑥 빼내가 버렸다. 안 그래도 작은 내 손이 거기까지 닿지 않는 게 정말 아쉽다. 녀석, 머리 좀 썼군. 뭔가 허탈해져서 짜증이 난다. 이렇게도 쑥맥이라니 이제 정말 질려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이 자식은 안 가고 뭐 하고 있는거야. 소심한 주제에 덩치는 커서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다 가리고 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햇살보다야 이 녀석의 존재가 더 좋았지만, 지금은 햇살을 가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녀석의 존재가 짜증날 것 같다는 걸 모르나. 그런 걸 절대 알리가 없는 녀석은 잠시 머뭇머뭇거리며 있다가, 말문을 연다.

 "저기... 말야."

 "뭐."

 "...혹시 내가 네 노트 빌려가는거, 싫어?"

 ...아까 전에 내가 한 말이 마음에 걸리나 보다. 그래서 이 녀석 앞에서는 뭔 말을 제대로 못 한다니까. 그래도 뭐, ...이런 게 이 녀석의 귀여운 점이다. 고개를 푹 숙인채로 상심해 있으면서 내가 준 노트는 놓지 않고 꼭 안고 있는 폼이 귀여워 저렇게 소심한 말을 지껄인 것은 봐주기로 했다. 몇년 간 봐도 저런 건 질리지 않을 것 같단 말이지.

 "네가 내 노트 더럽히는 것도 아니고, 별로 싫지 않아. 대체 내가 너랑 몇 년을 알고 지낸 사인데 노트 가지고 뭐라고 하겠냐, 이 멍청아."

 말이 떨어지자 마자 녀석의 얼굴이 헤실헤실 밝아진다. 바보같은 녀석 같으니. 내가 멍청이라고 말한 건 신경도 안 쓴다. 아니, 내 험한 말투에 적응이 되서 자동필터링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뭐라고해도 진짜 멍청이다, 이 녀석은.

 "가방 챙겨와. 집에 가자. 오늘 엄마가 너 불러오라고 하시더라."

 "어, 어? 아, 아줌마가?"

 "응."

 뻥입니다요, 멍청씨.

 "아, 그, 그럼... ...으, 응. 갈게, 갈게!"

 "빨랑 가방 챙겨오기나해."

 "으응!"

 너무 빨리 가고싶은 티를 내고 싶지 않은 것인지, 나름 천천히 나간다고 나갔지만 왼발과 왼팔이 동시에 나간 자신의 실수를 알기나 할까. 녀석이 나간 후에야 안심하고 실소를 터뜨린다. 아아, 정말 귀엽다니까.

 그치만 오늘의 작전도 실패로 돌아갔다. 대체 어떻게 하면 저 녀석이 내 손을 잡게 할 수 있는건지. 집에 가면 연구해봐야지. 어차피 오늘은 집에 아무도 없으니까.




 맘에 드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쉽게 써서 죄송해요OTL[도망도망]
 

by 파닭 | 2007/03/25 00:04 | 파편의 추스린 조각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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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제절초 at 2007/03/25 08:59
...뭔가 소동물계 공!? 이건 또 새로운 차원인데 'ㅂ' 그래도 꽤 재미있었어. 근데 노트 빌려주는 애가 수...역할인게 맞나 'ㅅ'. 웬지 말투는 널 닮았다고 생각해버렸어.(웃음)
Commented by 파닭 at 2007/03/25 11:46
제절초오빠/ 소동물계입니까![웃음] 예에 맞아요. ...그런데 어찌 저런 험한 말투가 제 말투와 닮았...OTL 너무 이입해버린걸까나요[한숨]
Commented by 제절초 at 2007/03/25 13:29
아니 뒷쪽의 거친 말 말고 '자, 가져가.' '안가져갈거야? 무거워. 어서 가져가.' 라고 하는 말투 'ㅅ' 묘하게 너랑 닮은건지 너랑 어울린건지. 아무튼 그래^-^
Commented by 나인볼 at 2007/03/25 17:38
음, 이거 여러모로 녀석 취향인 글이군요(...).
Commented by 파김치 at 2007/03/25 21:22
우어어 너무 우물쭈물하잖앗! 확실하게 교육시킨 다음의 이야기도 써줘요!(....야)
Commented by 파닭 at 2007/03/26 20:13
제절초오빠/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OTL
나인볼님/ 다행이군요[...]
파/ 우물쭈물한게 매력이예욤:D 다음은 몰라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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